
한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도, 지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수많은 직업들이 일상 속 생계수단으로 존재했다. 특히 한국을 포함한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 20세기 중반까지의 직업군은 ‘생계형 직업’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는 곧 개인이 가족을 부양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고, 산업 구조의 대대적인 개편과 기술 발전, 교육 수준의 향상은 과거 생계형 직업 대부분을 대체하거나 사라지게 만들었다. 본 글에서는 과거의 대표적인 생계형 직업들이 오늘날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 직업들이 남긴 의미와 현대 사회와의 연결고리에 대해 깊이 있게 탐색하고자 한다.
거리에서 만났던 직업들 – 생존과 일상이 겹쳐 있던 시대
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거리 곳곳에서는 다양한 생계형 직업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구두닦이, 엿장수, 아이스께끼 장수, 고물상, 삐끼(호객꾼), 행상, 장날 좌판 상인 등은 당시 도시와 시골 어디서나 존재하던 직업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학력이 필요 없고 초기 자본이 거의 들지 않으며, 단순한 기술만으로 시작할 수 있는 점에서 ‘생존형’ 생업에 가까웠다. 예를 들어, 구두닦이는 대부분 도시의 번화가 입구나 관공서 근처에 자리를 잡고 종일 손님을 기다렸다. 고급스러운 말은 없었지만, 고객과 눈을 마주치며 나누는 인사 한마디가 영업의 시작이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유일한 자산이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큰 인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도시 생활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이었다. 또한, 고물상이나 폐지 줍는 일 역시 도시 하부 경제를 구성하는 필수 생계 활동이었다. 이들은 단순한 자원 재활용 그 이상으로, 사회의 쓰레기를 수거하며 공간을 정리하는 역할을 했다. 한때는 ‘고철장 사장’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수익성도 있었지만, 점차 대형화·기업화되면서 개인 기반 생계형 구조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러한 거리 기반 직업은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며 공공질서와 위생 개념이 강조되자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또한, 편의점, 자동판매기, 택배, 인터넷 쇼핑과 같은 시스템이 확장되며 이들의 역할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남긴 ‘눈 마주치며 거래하던 시대의 기억’은 여전히 많은 중장년층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전통 기술과 손기술 중심의 직업 – 기술은 남았지만 시장은 사라졌다
과거 생계형 직업 중에는 오랜 세월을 통해 전승된 손기술 중심의 직업도 다수 존재했다. 대표적인 예로 재단사, 양복점 주인, 수선공, 대장장이, 이발사, 옹기장, 제기장이 있다. 이들은 오랜 도제 시스템이나 자가 학습을 통해 기술을 익혔으며, 특히 지역 공동체 안에서 독립적인 경제 단위를 구성했다. 재단사는 각 가정의 체형에 맞는 옷을 직접 제작해주는 기술자였고, 과거에는 동네마다 한두 곳씩 단골 양복점이 있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또한 수선공 역시 의류, 신발, 가방 등의 손질과 복구를 담당하며, 소비보다는 ‘고쳐 쓰는’ 시대의 생활 문화를 뒷받침했다. 대장장이는 농기구, 가정용 도구를 직접 제작하고 수리하며 농촌 지역의 필수 기능인이었다. 그러나 대량생산 시대의 도래와 함께 이들은 경쟁력을 점점 잃게 되었다. 공장에서 찍어낸 규격화된 상품이 훨씬 빠르고 저렴하게 공급되었고, 소비자 역시 ‘기다려서 맞춤 제작’하는 방식보다는 ‘바로 구매 후 교체’하는 소비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결국 이들 직업은 대형 브랜드, 온라인 쇼핑몰, 체인 이발소 등의 등장으로 생존 공간을 빼앗기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손기술 기반 생계형 직업 중 일부는 최근 복고 열풍과 맞물려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고급 맞춤복, 수제화, 수제 도자기 등으로 이름을 바꾸고 프리미엄 시장으로 진입한 사례도 존재한다. 이는 단지 직업의 생존이 아니라, 기술과 정성이 결합된 노동의 가치를 재평가하려는 현대인의 욕구를 반영한 결과다. 결국 생계형 직업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 직업으로의 전환 – 생존형 노동에서 전문직, 서비스직으로
과거 생계형 직업의 상당수는 오늘날 형태를 바꾸어 존재하거나, 새로운 이름으로 제도화되어 남아 있다. 이는 단순한 직업의 변화라기보다 노동의 위상, 사회의 가치 구조, 그리고 법·제도의 틀 안에서의 재정립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비공식 노동 → 공식 서비스직’으로의 전환이다. 예를 들어, 과거 거리 호객꾼이나 비공식 관광 안내원은 오늘날 ‘공인 문화 해설사’나 ‘여행 가이드’로 제도화되었으며, 일정 자격과 교육을 요구받는다. 거리의 삐끼는 규제 대상이 되었지만, ‘리테일 프로모터’나 ‘오프라인 마케터’라는 이름으로 기업 내 공식 직무로 편입된 경우도 있다. 또한, 과거 수공업 중심 생계형 직업은 창업 교육, 창직(創職) 지원 제도를 통해 1인 브랜드 또는 소상공인 창업 모델로 재정립되었다. 이는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 자아 실현과 브랜드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즉,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 삶의 철학을 담은 직업으로서 재해석된 것이다. 이처럼 과거 생계형 직업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변형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술 발전, 산업 구조 변화, 소비자 인식의 변화가 맞물리며 직업의 외형은 바뀌었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 속에서도 인간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가이며, 이는 미래 직업을 준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