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업은 한 사회의 구조와 흐름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생겨나는 직업도 있지만, 그만큼 많은 직업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직업의 소멸은 단순히 수요 감소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기술의 진보, 정치적 제도 변화, 사회적 인식 전환, 문화와 관습의 해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오랜 세월을 통해 직업의 명맥을 끊거나, 완전히 다른 형태로 재구성한다. 본 글에서는 ‘직업이 사라지는 과정’을 역사적 관점에서 조망하며,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직업의 탄생과 퇴장이 반복된 배경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기술의 등장과 직업 재편: 기계는 언제나 인간의 역할을 바꿨다
기술 발전은 직업의 소멸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요인 중 하나다. 이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고대 로마 시대에는 ‘서기관’이라는 전문직이 있었다. 문해력이 낮았던 일반인을 대신해 문서를 작성하고 정리하던 직업으로, 사회적 지위도 꽤 높았다. 그러나 인쇄술이 발명되고 종교개혁과 근대 교육의 확산으로 대중의 문해력이 높아지자 서기관이라는 직업은 점차 소멸하게 된다. 근대 산업혁명 시기에는 방직공, 조립 노동자, 수작업 인쇄공 같은 직업들이 증기기관과 컨베이어 벨트, 기계식 타자기의 등장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특히 미국 포드사의 컨베이어 시스템 도입은 직업 구조의 전면 개편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단일 기능 노동자들의 필요성을 낮추고 기계와의 협업 중심으로 노동 시장을 재편했다. 이는 ‘분업’이라는 개념이 도입되면서 과거 숙련 장인의 통합 직무가 분해되고, 일부는 아예 소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기술 기반의 직업 소멸은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AI, 자동화, 로봇 기술의 발전으로 단순 반복 업무는 물론, 데이터 분석, 번역, 상담과 같은 지적 노동조차 기계가 수행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예를 들어 은행 창구 직원, 전화 교환수, 통역사, 회계사 보조 등은 이미 상당 부분 디지털 시스템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이는 인간의 능력이 기술적 성취 앞에서 구조적으로 변형되어야 함을 의미하며, 직업 자체의 정의를 다시 쓰게 만들고 있다.
제도와 권력 구조의 변화: 법과 국가가 없애버린 직업들
직업이 사라지는 또 다른 큰 원인은 ‘제도적 변화’이다. 왕권, 종교, 식민지 지배, 법률 체계의 개편은 사회 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직업의 존속 여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고대나 중세 시대에는 특정 계층만이 수행할 수 있었던 직업이 있었고, 이것은 신분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예를 들어 고려와 조선 시대의 ‘백정’, ‘무당’, ‘관노’ 같은 직업은 사회적 제도에 의해 특정 계급에게 부여되었으나, 근대적 평등 사회가 들어서며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전통 민속 직업이 대거 소멸했다. 전통 제기장이, 옹기장이, 역관(번역관), 향약 운영자, 유학 기반 서당 훈장 등은 일제의 근대화 정책과 일본식 행정 제도의 강제 도입으로 인해 사라지거나 병합되었다. 특히 향약과 유교 기반의 교육 체계가 일본식 보통학교로 대체되며, 전통 교육 직업은 제도적 틀에서 배제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권력 구조의 변화는 직업 구조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군사정권 시기에는 일부 문화예술 분야가 탄압되며 특정 직업군(민속 굿판 연희자, 무속화가 등)이 비주류로 전락했고, 민주화 이후 다시 복원되는 과정에서 일부만 살아남았다. 이처럼 정치·제도적 개입은 직업을 없애는 동시에, 특정 직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거나 ‘권장 직종’으로 유도하는 도구로 작용해왔다. 대표적으로 거리 노점상이 도심 재개발 정책으로 단속 대상이 되며, 사실상 도시 공간에서 퇴출된 것도 제도적 직업 소멸의 사례다.
문화와 인식의 전환: 시대가 허용하지 않는 노동
기술과 제도 외에도 직업 소멸에는 사회적 인식과 문화의 변화가 결정적 영향을 준다. 과거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노동이 어느 순간 ‘비도덕적’, ‘비위생적’,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외면받기도 한다. 특히 직업에 대한 ‘낙인’이 강해질수록 해당 직업은 신입 유입이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과거 많은 도시에서 활동했던 ‘구두닦이’, ‘엿장수’, ‘공중전화 수리공’, ‘리어카 장사’, ‘지게꾼’ 등은 ‘가난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점차 거리에서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이들은 단순 생계를 위한 노동자였지만, 급격한 소비문화 확산과 중산층 중심 가치관이 자리잡으면서 ‘낡은 직업’이라는 편견에 휩싸였다. 특히 미디어에서 이들의 삶을 빈곤 또는 불쌍함으로만 재현하면서, 직업 자체의 긍정적 가치는 사라지고 부정적 이미지가 강화되었다. 또한 여성 직업군의 변화도 문화 인식과 맞물려 있다. 예를 들어 전화 교환수, 타자수, 여비서, 백화점 도우미 등은 한때 고졸 여성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직업이었지만, 여성의 고등교육 확대와 직장 내 성평등 인식이 확산되면서 점차 소멸하거나 재정의되었다. 이제는 ‘여성 전용 직종’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시대다. 결국 직업은 단지 ‘일’이 아니라, 사회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존중하며, 무엇을 기피하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적 척도다. 역사 속 직업의 소멸은 사회 인식과 가치 체계가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며, 단지 경제적 논리로만 해석할 수 없는 다층적 변화의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