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업은 시대의 요구와 기술 변화에 따라 사라지기도 하고 새롭게 생겨나기도 한다. 그러나 사라진 듯 보이는 많은 직업들이 실제로는 ‘형태와 명칭’을 달리하여 여전히 현대 사회에서 기능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름은 변했지만 본질은 유사한 직업들, 과거에는 생계 수단으로, 지금은 전문 서비스로 자리 잡은 직업들을 살펴보면 ‘직업의 본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과거에 사라졌다고 여겨지는 직업들이 현대에서 어떻게 다른 이름과 모습으로 살아남았는지를 탐구한다.
구두닦이, 이발사, 재단사 – 서비스직으로 계승된 장인의 손길
한때 거리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직업 중 하나가 구두닦이였다. 도심 상가 입구, 시장 골목, 관공서 주변에서 구두를 닦으며 생계를 이어가던 이들은 단순히 ‘청소’를 하는 게 아니라, 정장 차림의 사람들에게 단정한 첫인상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구두를 신는 문화가 줄어들고, 저가 수입 신발의 보급으로 ‘닦아서 오래 신는’ 문화가 사라지면서 구두닦이 직업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그 기능은 오늘날 ‘슈케어 서비스’, ‘프리미엄 수제 구두 관리업’ 등의 형태로 진화하며 고급화되었다. 서울 강남, 성수 등지에서는 고가의 수제화 브랜드들이 구두 수선과 광택 서비스를 포함한 정기 케어를 제공하며 과거 직업의 본질을 계승하고 있다. 이발사 역시 한때는 동네마다 하나씩 있을 정도로 흔한 생계형 직업이었다. 하지만 대형 프랜차이즈 미용실, 헤어살롱의 등장과 미용 자격증의 국가 제도화로 인해, 개인 기반의 전통 이발소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복고풍 이발소’, ‘바버숍’이라는 이름으로 재해석되어 젊은 남성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단순히 머리를 자르는 기능을 넘어 ‘경험 기반 서비스’로 확장된 형태라 볼 수 있다. 또한 재단사와 양복점 운영자도 마찬가지다.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맞춤 양복’은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었지만, 대량생산 정장 브랜드의 확산으로 인해 점차 사라졌다. 그러나 최근 고급 수제복 시장과 웨딩·졸업·면접용 특수 의류 수요 증가로 인해 다시금 ‘비스포크 테일러링’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과거 동네 재단사의 숙련 기술이 이제는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의 영역으로 흡수되며 직업의 계승이 이루어진 셈이다.
삐끼, 호객꾼, 전단지 배포원 – 현대 마케팅과 접점에서 다시 태어나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삐끼(호객꾼)는 식당, 노래방, 클럽, 오락실 등지에서 손님을 끌어모으는 것이 주 업무였다. 이 직업은 한동안 불법 또는 비공식 노동으로 분류되며 부정적인 인식을 갖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소비자의 흐름을 가장 빠르게 읽는 ‘현장형 마케터’에 가까웠다. 현재 이들의 기능은 오프라인 판촉 전문가, 프로모션 알바, 리테일 마케터, 쇼핑몰 세일즈 파트너 등으로 제도화되었으며, 일부는 기업 소속 정규직으로도 편입되고 있다. 예를 들어, 대형 마트나 전자상가에서 볼 수 있는 ‘체험 부스 운영자’나 ‘시식 행사 담당자’는 과거의 호객 행위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예전에는 가판대에서 신문이나 팸플릿을 배포하던 전단지 배포원이 거리 곳곳에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이 역할이 디지털 마케팅 담당자나 온라인 광고 기획자에게로 넘어갔다. 콘텐츠를 제작하고 타겟을 분석해 광고를 송출하는 현재의 디지털 마케터들은, 전단지 배포원의 ‘맞춤형 정보 제공’ 기능을 디지털 환경에서 더욱 정교하게 수행하는 셈이다. 전단지를 직접 돌리던 시대에서, 클릭을 유도하는 시대까지 – 본질은 ‘정보 전달’이라는 동일한 목적을 지닌다. 심지어 일부 직업은 플랫폼 기술과 결합하여 완전히 다른 형태로 재탄생했다. 라이브 커머스 쇼호스트, SNS 인플루언서, 브랜디드 콘텐츠 제작자는 본질적으로 ‘제품을 소개하고 판매를 유도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예전의 장터 판매상이나 호객꾼과 기능적 유사성을 갖는다. 다만 이제는 단순 호객을 넘어 콘텐츠 제작, 유머 감각, 브랜딩 전략까지 요구되는 고난이도 직무로 격상되었다. 이는 단지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라, 직업의 사회적 위상 자체가 재구성된 사례다.
점쟁이, 장돌뱅이, 행상인 – 콘텐츠와 브랜드로 살아남은 생존형 직업
과거에는 점집이나 길거리에서 손금을 보거나 사주팔자를 풀이해주는 점쟁이가 대중의 일상 속에 존재했다. 농한기나 장날에 찾아오는 행상들과 더불어, 이들은 고정된 매장이 아닌 이동형 직업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과학주의 확산, 도시화, 제도권 종교의 확대 등으로 인해 점차 사라졌거나 주변부로 밀려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직업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플랫폼과 기술을 등에 업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점술사들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에서 타로, 사주, 별자리 콘텐츠를 제작하며 수십만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연애운 타로’, ‘MBTI 연애 사주’, ‘202X년 재물운’ 등 트렌디한 주제를 입힌 콘텐츠들은 과거 점쟁이의 구술 중심 상담 방식에서 벗어나 영상과 커뮤니케이션 기반 직업으로 진화했다. 이들은 단지 운세를 말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스토리텔링 능력과 콘텐츠 제작 역량을 갖춘 크리에이터이기도 하다. 장돌뱅이, 노점 행상인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유통 구조의 최전선에서 ‘최소 자본, 최대 순회’를 통해 물건을 판매하던 대표적 생계형 직업이었다. 현대에는 이들이 브랜드와 결합한 ‘팝업 스토어 운영자’, ‘오픈마켓 판매자’, ‘1인 셀러’로 변형되어 활동하고 있다. 특히 SNS 플랫폼에서 ‘핸드메이드’, ‘직접 만든 수공예품’, ‘전통 떡 판매’ 등을 하는 창업자들은 장돌뱅이의 정신을 계승한 현대적 사업자라고 볼 수 있다. 한때는 생존이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취향과 창의성이 결합된 ‘라이프스타일 직업’으로 정체성이 변했다. 결국 우리가 ‘사라졌다고 믿는’ 수많은 직업들은 형태와 환경만 달라졌을 뿐, 기능과 본질은 여전히 이 사회 어딘가에서 살아 있다. 이는 단순한 직업 변천사가 아니라, 인간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노동의 틀을 얼마나 유연하게 바꾸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